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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절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부활절, 사순절, 종려주일. 용어정리
    카테고리 없음 2020. 4. 10. 14:51

    부활절에 대하여



    부활절은 성도에게 믿음의 생동력과 승리를 맛보게 하며, 환희의 절기이다.

    부활절을 맞는 것은 아무런 준비없이 결혼날을 맞는 신랑. 신부와 같다.



    사순절


    사순절, 또는 수난절이라 하는 절기는

    부활절 이전 46일간 (주일을 제외한 40일) 기간을 의미한다.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는 기간으로 삼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을 묵상하며,

    믿음을 살피는 기간으로 삼아,

    내 믿음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점검하는 기간이며,

    결단의 계절로 삼아,

    이웃과 교회를 위한 좋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기간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종려주일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거나

    손으로 들어서 흔들어 축하하였듯

    고난을 향한 예수님의 결단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사탄을 대적하는 상징이 되며,

    번영과 (시92:12), 아름다움 (아7:78)의 상징이기도 하다.

    종려주일에는 온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위하여 기도하여 주며,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는 결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고난주간


    종려주일로부터 시작하는 고난주간에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한 주간에 일어난 성경 기사를 중심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데 전념한다.

    특히 성경읽기과 기도에 힘쓰는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난주간 동안 금식할 수 있는데 믿음으로 해야 하며

    교회를 개방하여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부활주일


    유대인의 날 개념으로 금요일 토요일과 주일 사흘을 무덤에서 지나신

    주일 아침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축하하는 절기이다.

    부활절은 기독교에 있어서 성탄절과 함께 양대 절기인데,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현재와 같이 춘분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정하고 시행하게 되어 되었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새벽에는 연합새벽예배를 드려왔고,

    부활절 아침 예배는 기쁘고 환희에 찬 가운데 드리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부활절이 유동적인 이유


    부활절은 매년 3월 22일부터 4월 25일에 온다.

    이것은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이다.

    이렇게 지켜지는 이유는 그 유례가 있다.

    초대 교회 때 3세기 동안에는 해마다 부활절을 지켜야 할 일자에 대하여

    계속 날카로운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을 음력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로마교구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주일(일요일)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이것은 서방 크리스천들에게는 주중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을 포함한 로마 동쪽에 위치한 교회들)의

    크리스천에게는 달(月)월의 날이 중요하였다.


    이런 의견의 해결은 니케야총회(325년)에서 결정했는데

    결국 달과 주중의 날 둘 다 인정하여

    부활절은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런 유동적인 부활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부활절에 휴가를 하는 학교와 대학들이 교육계획을 종교적인 휴일과 맞추기 위하여

    어려움을 보기 때문에 관심이 많다.


    이뿐 아니라 의복상으로 이른 부활절과 늦은 부활절 때문에

    행사의 복의 수요공급이 해마다 달리 되는 경우가 있다는 등으로

    근년에 와서는 부활절이 고정된 주일이 되도록

    고정된 교회력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부활의 의의


    의식주의자요 독선주의자들인 바리새교인들,

    부활이 없다고 내세를 부인하는 세속주의자들인 사두개교인들,

    그리고 잔인한 로마의 병정들의 손에 의하여

    우리 주님은 만민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득의한 줄 알고 의기양양하여,

    주님의 무덤을 인봉하여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킴은 헛되이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우리 주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무덤문을 헤치고 부활하고야 말았습니다.

    검은 구름이 해를 가리울 수 있으나 해를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악의 세력은 의의 세력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이며, 불의에 대한 의의 개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생명의 빛으로 통하는 일시적인 관문일 뿐,

    죽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11:25).




    십자가의 의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말씀의 성취이다.

    대속 :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물이 되셨다.

    따라서 그는 누구든지 믿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죄인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또 용서해주신다.

    화목 : 인간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으로 화목하게 되었으며(롬 3:25),

    양자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롬 8:15)


    의인 : 인간은 죄의식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의롭게 인정되었다.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는 생명이다. (요 11:25-26)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는 신약성경에서 104회나 언급되고 있다.

    기독교의 예수님만이 부활을 보증해 주시고 있며,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 수 있을까?


    (김해철 목사)


    혈육의 몸과 부활의 몸은 단절속의 연속성

    씨앗이 썩은뒤 새싹이 돋아남과 같은 이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내세와 부활신앙을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부활신앙 위에 기초한 고린도교회 교인들간에도

    죽은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올 것이냐 (고전15:35)가 주요 관심사였다.



    가령 시체를 화장해 버린 사람은 부활의 날에 어떻게 될 것이며,

    선교여행을 하다가 파선을 당해 익사한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이며,

    굶주린 이리들의 밥이 되어 순교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난해하고 궁금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이와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혹평을 한다(고전 15:36).

    왜냐하면 밭에 뿌린 씨앗이 새싹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다소라도 관찰한 사람이라면

    죽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하게 될 것인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15:36-37).

    씨앗을 뿌리면 씨앗은 썩고 그 대신에 새싹이 난다.

    그러나 이 씨앗과 새싹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새싹이 나기 위해서는 먼저 씨앗이 죽어야 한다.


    씨앗이 죽는다고 해서 씨앗의 형태가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씨앗의 형태가 새싹의 형태로 변화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씨앗과 새싹 사이에는 단절이 있음과 동시에 연속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속성은 일관된 연속성이 아니라 비연속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자연계의 현상을 통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용의주도한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씨앗에도 여러가지 씨앗이 있듯이 몸에도 혈육의 몸과 부활의 몸이 있으며

    이 혈육의 몸과 부활의 몸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15:39).

    그리고 사람에게는 혈육의 몸이 있을 뿐이나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만물이 자기에게 복종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3:21)고 하셨다.


    또 죽은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된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심령된 몸으로 다시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15:42-44)고 설명한다.


    우리가 죽더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그 신앙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우리가 좌절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활한 육신은 어떤 모습일까?


    썩지않고 영원한 "생명의 형상"

    살과 뼈 가진점에서 이전의 몸과 연관성

    시간과 공간 제약 안 받고 영광으로 빛나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욥14:14)하는 질문은

    수천년 동안 내려오는 인간의 질문이다.


    죽으면 그만이고 특히 몸이 썩으면 없어져 버리는데

    어떻게 다시 산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장사된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고전15:23)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신자들의 부활을 보증하셨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다.

    사르밧 땅의 과부아들(왕상17:17-24),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17-27),

    유대 관원인 야이로의 딸(막5:22-43),

    나인성의 청년(눅7:11-17),

    나사로(요11:17-44),

    여제자 다비다(행9:36-43),

    졸다가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행20:7-12)


    이렇게 살아난 사람은 신학적인 의미의 부활은 아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었다가 소생했을 뿐 부활의 몸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부활의 몸이란 예수님 경우처럼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나 살과 뼈를 가진 몸이다(눅24:2940).

    어떤 불신앙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같이 예수님의 출현이 영의 출현이거나,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못자국을 보이시며

    손가락을 내밀어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 상처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다(요20:2527).

    무덤을 찾아왔던 여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았다고 선언하고 있다(마28:9).



    부활한 몸은 부활체를 가졌기에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셨다(눅24:41-45).

    영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부활의 몸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와 동일하지는 않으나 깊은 연관성이 있다.

    도토리가 자라서 참나무가 되고 갓난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될 때

    동일한 물질에서 발전하지만 그 형태가 같지 않다.


    도토리와 나무, 아이와 어른 사이에 차이가 있으나

    계속성이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것 같이

    현재의 육체와 부활의 몸은 계속성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가까이서 예수님을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로 생각한 일이나(요20:1415),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길에서 동행하게된 예수님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눅24:16).

    제자들이 무서워하며 모여있던 다락방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영으로 생각할 정도로(눅24:37)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변해있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는 흙으로부터 온 것이나

    부활 때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될 것이다(고전15:49).

    지금 우리의 몸은 썩고 욕된 약한 몸이지만 부활 때에 갖게 될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한 몸이 될 것이니 곧 신령한 몸이다(고전15:42-44).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난의 비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후에 가지시게 될 영광스런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변화산 사건이라 부른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고 전하고 있다.


    부활의 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부활체가 늙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을 것은 하늘의 천사들이 죽을 수 없음과 같다(마22:30).


    닫힌 방안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으며(요20:19),


    동행하던 일행중에서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눅24:31) 몸이 부활의 몸이다.


    가고싶은 곳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원할 때 즉시 사라지는 부활체는

    현재 우리 육체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것과 다르다.



    출근길에 또는 중요한 약속의 자리에 시간을 대기 어려워 조바심하며

    차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일도 부활한 몸을 가질 때는 없어질 것이다.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통하는 일도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 뺏기고 통곡하는 일도 부활 이후엔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고,

    살아있는 성도들도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를 받을 것이니(고전15:5152)


    성도들의 몸이 구속을 받는 복되고 소망스런 날이 될 것이다(롬8:23).



     이영제 목사의 스터디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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