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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시급 계산방법의 문제점. 연봉 5000만원이 최저임금?카테고리 없음 2018. 12. 31. 09:50복잡한 임금체계 탓 해법 찾기 어려워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오르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고액 연봉자가 ‘최저임금 미달자’(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근로자)로 분류되는 걸 두고 논쟁도 뜨겁다. 정부는 ‘최저임금 시급 계산식’을 바탕으로 준수 여부를 판단한다. 근로자의 월급(분자)을 근로시간(분모)으로 나눈 값이 시간당 최저임금(내년 기준 8350원)에 미치지 않으면 기업을 처벌한다.
이 계산식이 실제로 근로자가 받은 돈과 일한 시간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논란이 시작된다. 월급(분자)엔 번 돈보다 적은 금액이, 근로시간(분모)엔 일하지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걸까. 그 배경에는 ‘평균임금’ ‘통상임금’ ‘최저임금’이라는 3가지 복잡한 임금체계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고액 연봉자의 최저임금 미달 문제는 ‘월급(분자)’부터 살펴봐야 한다. 기업 입장에선 최저임금을 준수하려면 분자는 클수록, 분모는 작을수록 유리하다. 다만 정부는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월급에 기업이 근로자에게 준 모든 돈을 반영하지 않는다.
연봉 5200만원가량을 받는 직장인 김모(35)씨를 예로 들어 보자. 김씨의 기본급은 1900만원이다. 분기별 받는 상여금은 연간 2030만원에 이른다. 초과근무에 따른 연장수당도 500만원을 넘는다. 이밖에 명절 떡값과 휴가비, 교통비, 가족수당 등으로 연간 77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정부는 최저임금 준수 여부를 판단할 때 계산식의 분자에 김씨가 받은 기본급 1900만원만 반영한다. 1900만원을 12개월로 나눈 월급 158만원을 근로시간(최저임금 시행령 기준 209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7560원이 나온다. 내년 최저임금(8350원)에 미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김씨의 기본급 외 수당 약 3300만원을 최저임금 계산식에 왜 넣지 않을까. 그 이유는 현행 임금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법에는 평균임금, 통상임금, 최저임금이라는 3가지 임금 유형이 있다. 각각 정의, 쓰임새, 적용 범위가 다르다. 평균임금은 퇴직금 및 실업급여를 산정할 때 쓰인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계산 시 기준이 된다. 직장인이 초과근무를 하면 평상시 임금의 50%를 더 줘야 하는데, 이때 기준이 통상임금이다. 최저임금은 정부가 매년 최저생계비로 명시한 임금의 하한선이다.
각 임금체계는 근로자가 받는 똑같은 돈을 다르게 본다. 가장 크게 충돌하는 건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이다. 우선 김씨가 분기별로 받는 상여금(연간 2030만원)은 초과근무수당을 계산할 때 쓰이는 통상임금에 들어간다. 반면 최저임금 계산에선 빠진다. 통상임금은 정기·일률·고정성을 가진 돈을 말하는데, 최저임금은 이런 특성을 가져도 매월 1회 이상 지급되는 상여금이 아니면 계산식에 반영하지 않는다. 김씨가 받은 명절떡값, 휴가비, 교통비, 가족수당도 마찬가지다. 이 돈의 일부는 통상임금에 들어가지만 대부분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최저임금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초과근무수당도 최저임금 계산에서 빠진다.
법에 명시되는 임금체계가 복잡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의 노동시장은 성과와 무관하게 연차가 올라갈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매년 오르는 기본급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최대한 기본급을 적게 주는 대신 각종 수당을 만들어 근로자가 받는 총액을 크게 만들어 왔다. 수당은 언제든 바꾸거나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원인도 있다. 바로 통상임금이다. 한국 기업에선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다. 기업은 초과근로에 따른 수당으로 통상임금의 50%를 얹어줘야 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이에 통상임금의 특징(정기·일률·고정성)을 피하는 각종 수당으로 임금 항목을 쪼갰다. 통상임금에 들어가는 임금 항목이 줄어들수록 전체 통상임금 규모가 쪼그라들고, 이와 비례해 초과근로수당도 감소하게 된다.
‘정기·일률·고정성’이라는 통상임금의 모호한 특징은 이런 편법을 부추겼다. 예를 들어 김씨가 받는 분기별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기업이 재직 여부나 성과에 따라 다르게 지급한다면 통상임금에서 뺄 수도 있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각종 소송이 많은 이유다.
결국 고액 연봉자의 최저임금 미달 현상은 기업에서 초과근로수당을 적게 주려고 임금 항목을 쪼개면서 발생한 결과다. 기업들이 쪼갠 임금 항목의 일부가 최저임금 계산식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근로시간 대비 적은 임금을 주는 걸로 계산되는 것이다.
이는 통상임금 범위를 줄여야 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범위를 넓혀야 하는 기업에 상당한 딜레마다. 최저임금을 지키려고 임금체계를 바꾸면 초과근로수당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최대한 싼 값에 장시간 근로체제를 유지해온 것이 최저임금 계산에서 부메랑이 됐다.
최저임금 계산식에서 근로시간(분모)도 장시간 근로의 폐해를 드러낸다. 정부는 주휴시간을 포함한 209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본다. 이와 달리 재계는 대법원 판결처럼 주휴시간을 제외한 174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두고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씨의 경우 월급 158만원(기본급 1900만원)을 근로시간으로 나눌 때 209시간이 아닌 174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임금이 9080원으로 나온다. 최저임금 미달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다.
근로자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 유급휴일을 주는 주휴시간은 1950년대 근로자들이 주 6일, 하루 12시간을 일하자 휴식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재계는 그동안 노동환경 등이 달라진 만큼 제도를 없애자고 한다. 그러나 주휴시간에 대한 수당(주휴수당)은 통상임금은 물론 최저임금에도 들어가는 중요한 임금 항목이다. 주휴시간 제도를 없애면 근로자의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 기업이 줄어든 임금을 보전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폐지 쪽에 무게를 두기 쉽지 않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문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곪아온 임금체계와 근로시간 법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결과”라며 “최저임금 시행령 같은 지엽적 방식으로 막으면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댓글